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연방준비제도(FRB·연준)가 딜레마에 내몰렸다. 관세발 충격이
경기 둔화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금리를 내려 침체에 대비할지, 아니면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의 재발을 막을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는 분석이다. 8일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 따르면
금리 선물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 발표 이후 연준의 금리 인하 횟수 전망을 늘리고 있다.
현재 시장은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지금보다 4차례 인하할 확률(약 33.9%)을 가장 높게 보고 있으며
5차례 인하 확률(32.1%)도 높다. 지난 1일만 해도 연 3회 금리 인하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무역 전쟁이
침체를 몰고 올 가능성에 무게를 둔 전망이다. 실업과 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중앙은행의 원칙적인 대응은
기준금리 인하다. 기업과 가계가 더 싸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지원해 수요를 끌어올려 경제를
활성화하는 원리다.
이날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인터뷰에서 “경기 침체가 올 가능성이 (피할 가능성보다) 더 크다”며
“침체가 발생한다면 추가로 200만명이 실직할 것이고 가구당 소득은 5,000달러 이상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처럼 경제 둔화의 원인이 공급 측면에 있을 경우에는 금리 인하를 통한 대응은
어려워진다. 공급이 줄고 생산 비용이 올라 가격 상승 압박이 큰 상태에서 금리 인하까지 겹칠 경우
인플레이션이 높아질 수 있어서다. 1970년대 석유파동이나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대표적이다.
월스트릿저널(WSJ)에 따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중국에 대한 50% 추가 관세로 0.35%포인트,
앞서 발표한 관세만으로 2%포인트 더 높아진다고 관측했다. 기존 인플레이션에 더할 경우 관세의
영향에 따른 인플레이션은 4.6%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연준의 딜레마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제롬 파월 의장 등 연준 내부에서는 물가 상승을 주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파월 의장은 최근
“높은 관세가 미국 경제에 영향을 미치면서 향후 몇 분기 동안 인플레이션을 상승시킬 가능성이
크다”며 “관세가 적어도 일시적인 인플레이션 상승을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그 영향이
더 지속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관세 충격이 예상보다 클 수 있는 만큼 금리 인상이라는 강력한 처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빌 더들리 전 뉴욕연은 총재는 “관세처럼 생산성에 타격을 주는 쇼크는 인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
기대가 장기화하는 특징이 있다”며 “1970년대 두 번의 석유파동을 생각해보면 두 번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지속됐고 기준금리를 20%로 올려 경제를 더 깊은 침체로 몰아 넣어서야 폴 볼커 당시 연준
의장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통화정책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면서 연준이 관망세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미국이 상대국과 관세율 협상을 막 시작한 데다 관세 여파가 물가와 성장에
나타나는 시차도 있기 때문이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연은 총재는 “지난해 기준금리를 1%포인트
인하함으로써 정책이 적당히 제약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좋은 위치에 있다”면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나갈
수 있는 시간과 여력을 쌓았다”며 관망 기조를 지지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압박이 거세질 수 있다는 점은 변수다. 둔화 징조가 뚜렷해질수록
행정부의 인하 압력과 불응하는 연준 간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4일 “지금이
연준 의장 파월이 금리를 인하하기에 완벽한 시기”라면서 그를 향해 “금리를 인하하라, 정치를 하는
것은 중단하라”고 재차 압박했다. 파월 의장은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며 행정부의 영향력을 거부하고
있다. 웰스파고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세라 하우스는 “연준은 지금 매우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다”며
“연준은 가능한 한 오랫동안 금리를 동결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경제=김흥록 특파원>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250410/1559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