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갑작스러운
파산과 관련해 지난 1년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밀어붙인 초고속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해 ‘결국 올 것이 온 것’이라는 반응이 시장에서 나온다.
초저금리로 넘쳐나던 유동성이 금리 인상으로 급속히 말라붙으면서 그간
유동성이 쏠린 대표적인 분야인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의존도가 높은
SVB에서 가장 먼저 사고가 터졌다는 것이다.
12일 로이터통신은 SVB의 파산 이후 시장 참여자들이 그간 금리 인상으로
인해 값싼 자금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고 경제의 취약함이 드러났다고 보고
앞으로 더 혼란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SVB는 지난해 연준의
공격적 금리 인상으로 미 국채 등 보유 자산 가치가 하락하면서 유동성 압박을 받았다.
이에 국채 등 보유 자산을 어쩔 수 없이 매각해 18억 달러(약 2조3천600억원)
규모의 손실을 봤는데, 이것이 뱅크런(대량 인출 사태)을 불러일으켰다.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에 따르면 SVB 위기가 처음 알려진 지난 9일에만
고객들은 420억 달러(약 55조2천억원)를 인출했다. 이는 이 은행 총
예금(1천754억 달러)의 24%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이다.
그 결과 SVB의 현금 잔고는 마이너스 9억5천800만 달러(약 1조2천600억원)로
떨어져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다. 현재까지는 SVB 파산의 충격이 타 은행과 다른
부문으로도 확산해 새 위기가 발생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이는 전 세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얼마나 더 높게 올리느냐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고
로이터는 관측했다. 투자자들은 급격하게 금리를 인상한 연준을 비판하고 나섰다.
유명 헤지펀드인 헤이먼 캐피털 매니지먼트 설립자이자 최고투자책임자(CIO)인
카일 배스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높인 후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면 무언가
붕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투자자는 “연준은 금리를 올린 속도가 그들이 돈을
찍어낸 속도만큼이나 무모했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SVB 파산 사태가 이달 연준의 금리 인상 폭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급속히 힘을 얻고 있다. 연준은 오는 21일부터 이틀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어 금리 인상 수준을 결정할 예정이다. 앞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7일 상원
청문회에서 “최근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는 최종적인
금리 수준이 이전 전망보다 높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SVB 파산 사태를 겪으면서 시장의 분위기는 급격히 바뀌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FFR) 선물 시장에서
연준이 이번 달 회의에서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은 한국시간 13일
오후 4시 11분 현재 95.2%에 달해 0.5%포인트 인상(빅스텝) 확률 4.8%를 크게 앞섰다.
SVB 파산 이전인 지난 9일 0.5%포인트 인상 확률이 78.6%, 0.25%포인트 인상
확률이 21.4%였던 데 비하면 SVB를 거치면서 완전히 뒤집어진 것이다.
월가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아예 연준이 이번 달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고 로이터·블룸버그 등이 전했다. 얀 하치우스 골드만삭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날 보고서에서 연준이 이번 달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하지
않으며, 이후의 금리 경로에는 상당한 불확실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앞서 골드만삭스는
이번 달 연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면서도 5월과 6월, 7월에는 기준금리가 각각 0.25% 포인트씩 인상될 것이라는
전망은 변하지 않았고 최종 금리(기준금리 고점)는 5.25∼5.5%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다만 오는 14일 발표 예정인 2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높게 나온다면 CVB로
인한 금융권의 불안에도 연준이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로이터는 진단했다. 월가는 SVB 파산의 여파가 어디로 확산할지 우려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역대 두 번째이자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의 은행 파산인 이번 SVB 사태로 일부 투자자들은 몇몇 지역 은행들이
직면한 문제가 은행업계 전체로 번질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투자자들이 다른 은행도 비슷하게 급격한 붕괴를 겪을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은행주를 모아놓은 KBW 나스닥 은행주 지수는 지난주 16%나 빠졌는데,
이는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이 시작된 지난 2020년 3월 이후 최악의 실적이다.
특히 부동산 담보대출 등 위험 자산에 지나치게 노출된 은행들과 현금 인출에 민감한
고객층을 두고 있는 은행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어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
시그니처 은행, 웨스턴 얼라이언스 뱅코프, 팩웨스트 뱅코프 등의 주가가
급락해 거래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다만 대형 은행들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보다 더 많은 자본을 확보하고 있으며 그때와는 은행 업계가 받는 압박에
큰 차이가 있다고 WSJ은 진단했다. SVB는 보유 자산의 상당 부분인 미국
국채와 기관 보증 주택저당증권(MBS)이 금리 인상에 따라 가치가 하락해
유동성 문제를 겪었다. 이중 국채는 만기 시 전액 상환이 보장되므로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관련
파생상품과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지난 10일에는 투자자들이 SVB
사태가 통화긴축 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에 채권시장으로 몰려들면서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0.2%포인트 이상 급락했다. 채권 금리와 가격은
반대로 움직인다. 한편 미국 재무부와 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SVB에 고객이 맡긴 돈을 보험 대상 한도와 상관없이 전액 보증하고
유동성이 부족한 금융기관에 자금을 대출한다고 이날 밝혔다.
골드만삭스는 이 조치가 예금 인출을 겪고 있는 은행들에 상당한 유동성을
공급하고 예금주들의 신뢰를 개선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미 당국의 이런 조치와
골드만삭스의 이번 달 금리 동결 전망에 미국 뉴욕증시 선물도 강세를 보였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한국시간 13일 오후 3시 28분 현재 다우존스 지수 선물은
1.24%,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 선물은 1.77%, 나스닥
100 지수 선물은 1.90% 각각 올랐다.
dylee@yna.co.kr
https://www.koreatowndaily.com/articles/20230313040614